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 사업회 / 충북향토사도서관

  • Home
  • South Korea
  • Cheongju
  •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 사업회 / 충북향토사도서관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 사업회 / 충북향토사도서관 충북기독교역사 사료 및 청주선교부 관련 사료를 발굴 번역 보관 출판하고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사업을 진행합니다

충북선교의 개척자 밀러선교사의 「OUR KOREAN FRIENDS」를 번역한 책, 「조선인 친구들」출간지난 3월 초 인쇄소에 원고를 넘겼으나, 총선, 신학기가 겹치며 일정이 늦춰지다 이제야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
30/05/2024

충북선교의 개척자 밀러선교사의 「OUR KOREAN FRIENDS」를 번역한 책, 「조선인 친구들」출간

지난 3월 초 인쇄소에 원고를 넘겼으나, 총선, 신학기가 겹치며 일정이 늦춰지다 이제야 우리 손에 들어왔습니다.

「조선인 친구들」은 밀러 선교사의 「OUR KOREAN FRIENDS」를 번역한 책으로, 1935년 뉴욕의 ‘Fleming H. Revell Company’에서 출판하였습니다.

「조선인 친구들」은 모두 37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는데, 40여 년을 조선에서 사역한 밀러 선교사는 조선의 문화와 관습, 결혼, 미신, 불교, 민속 등과 청주·충북지역의 초대 신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속리산 법주사와 상환암 등 속리산을 두 편의 에피소드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밀러 선교사는 조선의 문화와 관습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대학교 도서관의 ‘마펫 컬렉션’에는 ‘밀러 앨범’이 포함되어 있으며, ‘밀러 앨범’에는 밀러가 촬영한 것으로 생각되는 사진들은 조선의 문화와 관습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조선에서의 복음」에 이어 「조선인 친구들」에도 청주읍교회가 관련된 8개의 에피소드와 묵방교회, 신대교회, 조치원교회, 성서학원, 공림사의 초기 신자들의 모습 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마지막 37장에서는 밀러 선교사가 1931년 안식년으로 미국으로 귀국하는 도중에 방문한 하와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밀러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귀국하는 여정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하여 유럽을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1931년의 귀국길에는 배편으로 태평양을 횡단하고 있습니다.

「조선인 친구들」을 번역하며, 청주·충북지역의 초대 신자들의 모습 속에서, 오늘을 사는 나는, 우리의 신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조선인 친구들」 목차



1. 목침 던지는 할아버지

2.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3. 노름꾼 송 씨

4. 세상을 뒤집다

5. 홍 씨의 신물(神物)

6. 메밀 부침개와 이야기

7. 성경 색인부 고 씨

8. 자기 평판을 지킨 선교사

9. 달맞이 마을 이 씨

10. 백 장로의 어머니

11. 대홍수

12. 영원한 생명의 샘(조선 민화 각색)

13. 중풍 들린 할아버지의 간증

14. 동양과 서양

15. 미쳐버린 곽 씨

16. 감사하는 마음은 윤활유

17. 술집 아들

18.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

19. 조선 중부의 신성한 산

20. 무당과 전도부인

21. 조선의 예화(例話)

22.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23. 걱정 치료

24. 그리스도인의 경험담

25. 신실하신 하나님

26. 귀신 든 나무

27. 강한 구원의 능력

28. 이 목사의 아내감

29. 정직한 보상

30. 첩의 자식

31. 조선의 마태

32. 상환암(上歡庵)

33. 피난자의 도시

34. 화평케 하는 자의 복

35. 박 씨의 딸

36. 권서 박 씨

37. 네 씨를 뿌려라



구입문의 010-7234-2446

https://m.blog.naver.com/cjymca1948/223463568956

16/03/2024

지난 3월 1일 일석 김태희 선생 연례 추모행사 후 명칭 문제에 관해 회원간의 의견 교환이 있었습니다. 이...

16/03/2024

일석 김태희선생 기념사업회 최지호 김태희 선생 논문을 다른 이도 아닌 청주제일교회 교인이 발표하고 또...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간행한 “다시 찾은 보물” 시리즈 6권의 책을 어제(3월 9일) 받았다. 먼저 좋은 기획으로 간행한 책을 보내주신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도시센터에 감사드립니다. 시리즈 2권 『청주의 역사...
12/03/2024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에서 간행한 “다시 찾은 보물” 시리즈 6권의 책을 어제(3월 9일) 받았다. 먼저 좋은 기획으로 간행한 책을 보내주신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도시센터에 감사드립니다.

시리즈 2권 『청주의 역사인물』 에서는 11명의 역사 인물을 소개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배창근을 소개하고 있다.

조혁연은 2021년 12월 충북학연구소의 에 「기독교인 배창근의 의병 활동과 순국」을 게재하면서 꾸준히 배창근에 관심을 가지고, 2023년 12월 27일 중부매일에 “청주의 역사인물 13, 배창근, 해산군인에서 ‘기독인 의병’이 되다.”를 게재하고, 2023년 3월 2일에는 불교방송 “라디오 충북역사 기행”에서도 배창근을 소개하고 있다.

『청주의 역사인물』 에서 배창근을 소개하는 이도 조혁연으로, 배창근을 청주 사회에 지속하여 소개하는 열의에 감사를 전한다.

조혁연의 배창근에 대한 글은 「기독교인 배창근의 의병 활동과 순국」이 중심에 있으며, 『청주의 역사인물』 속의 배창근 기사는 중부매일 기사와 유사하며 새로운 내용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의 글에서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을, 『청주의 역사인물』과 「기독교인 배창근의 의병 활동과 순국」을 통해 검토해 보려 한다.

조혁연은 「기독교인 배창근의 의병 활동과 순국」 133페이지에서 “충북 기독교 역사를 집대성한 『충북기독교백년사』(2002, 충북 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사업회)도 그의 아들 배민수 목사를 언급하면서 ‘1896년 청주에서 청주 의병대장 배창근의 외아들로 태어나’라고 한 단어만 기술하였다. 게다가 『충북기독교백년사』는 배창근이라는 인물을 찾아보기 [색인표]에 싣지도 않았다. 전국은 물론 충북 기독교계도 최소한 지금까지 배창근이라는 인물을 거의 모르고 있거나 주목하지 않은 셈이다.”라고 하였다. (밑줄은 필자가 강조하기 위해서)

이에 대한 답으로, 먼저 배창근에 대해 알아보고 배창근이 청주에 소개되는 시기와 내용을 정리하려한다.

배창근은 청주진위대 부교(하사)로 근무하던 1907년을 전후한 시기에 청주읍교회에 입교하였으며, 1907년 8월 4일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당하자 이후, 8월 26일(음력 7월 18일) 진천군 초평면 사방기에서 의병을 토벌하다 낙오한 일군 2명을 총살한 죄목으로 1908년 여름 체포되어 동년 11월 공주지방법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1909년 6월 대심원에서 원심이 확정되어 동년 8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받아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충북의 의병투쟁사와 독립투쟁사에서는 배창근을 중요하게 기록하지 않고 있고, 또한 청주제일교회에서도 배창근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배창근의 외아들 배민수 목사는 청주에서 태어나 배창근을 따라 청주읍교회 교인이 되었고, 청남학교(지금의 청남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평양 숭실학교에 진학하며 청주를 떠났다. 배민수는 미국으로 유학하여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된 후 청주제일교회를 방문하여 환영받았고, 1965년 2월 11일, 배창근의 의병 활동 당시 배창근의 동지였던 한봉수를 만나 배창근의 의병투쟁에 관해 한봉수가 기록한 3페이지의 “의사 배창근 씨 순국투쟁기(義士 裵昌根 氏 殉國鬪爭記)”를 전달받는다.

배창근에 대한 처음 기록은 1998년 이쾌재 목사가 충북노회 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발간한 『충북노회사료집』에 수록된 케긴 선교사의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에서 기록하고 있다.

“배씨의 남편은 반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다. 그가 아들을 서울에 있는 감옥으로 오라고 전갈을 했으나 그녀는 돈이 없다. 선교사들이 도울 수 없을까?” (P.108)

90~110페이지에는 “한국선교전선(The Korea Mission Field) 제5권 1909년 8월 15일 한국 서울”을 제목으로 여러 글을 번역해서 싣고 있고, 케긴 선교사의 글도 그중 하나이다.

는 1905년 11월에 창간되어 1941년 11월에 폐간되기까지 국내에서 선교사들이 발행한 영문 월간잡지로, 한국 교회 역사를 비롯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전반에 관한 문헌으로 한국 근세사 연구의 필수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으며 1986년에 영인하여 보급되었다.

1909년 8월호에는 청주선교부가 정식 개설을 허가받은 일을 축하하기 위해, ‘청주 특집호’로 제작하여 기사 전부가 청주선교부 내용으로 채워졌고, 『충북노회사료집』 90~110페이지에 번역문이 실려있다.

두 번째로 알려진 기록은, 연세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배민수 자서전』으로 1999년 출판하였으나, 청주에는 2003년 10월 13일, 번역자 박노원 목사가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에 『배민수 자서전』을 소개하고 증정하며 배창근이 청주에 알려지게 되었다.

세 번째 기록은 배창근의 판결문으로 1974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1』에 수록되었으나, 2003년 『배민수 자서전』이 청주에 알려진 뒤로 판결문 역시 알려졌다.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보 제28호(2006.12.28)에는 ‘배창근 판결문’과 ‘공적 조서’ 그리고 배창근에 관한 몇몇 기사가 실려있다.

네 번째 기록으로 2012년 국학자료원에서 출간한 충북대학교 박걸순의 『충북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에는 배창근을 소략하게 기록한다.

“청주진위대 해산 직후 진위대원들의 구체적인 활동으로는 1907년 8월 중순 경 하사 출신인 배창근(裵昌根)과 병졸 출신의 이기석(李基石)이 진천군 초평면에서 의병 탄압을 위해 출동한 일병 2명을 유인하여 사살한 일제 측 기록이 확인된다.”

박걸순의 기록은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배창근에 관해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기록이 배창근이 청주에 소개된 과정과 내용이다.

조혁연은 『충북기독교백년사』에서 언급하지 않았다고 “전국은 물론 충북 기독교계도 최소한 지금까지 배창근이라는 인물을 거의 모르고 있거나 주목하지 않은 셈”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논리의 비약으로 『충북기독교백년사』는 단지 저자 전순동 개인의 주장일 뿐이며, 결코 충북 기독교 역사를 집대성하지도 않았다.

배창근의 아들 배민수 목사는 1930년대 이후 개신교 내에서 상당히 저명한 인물로, 1910년대 평양 숭실학교를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국민회 조선지회’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 김형직과 민족운동을 함께하였고, 기독교농민운동가로 그의 농촌운동과 기독교사상은 이미 여러 저서와 논문의 주제가 되어 출판되었으며, 이들 저서와 논문에서는 예외 없이 배창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조혁연은 『청주의 역사인물』 155페이지에서 “배창근의 아들 배민수(裵敏洙, 1897~1968)는 1993년 자서전 『Who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누가 그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을 미국에서 영문으로 썼다. 그는 유학생 출신의 목사였다. 이 자서전은 1999년 『배민수 자서전』이라는 이름으로 연세대학교에서 번역·출간됐다.”로 기록하고 있는데, ‘1993년’이 묘한 위치에 삽입되어 오해를 일으키고 있다.

배민수가 『Who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을 탈고한 시기는 1951년이나 출판하지 않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농어촌부 총무로 근무하던 『배민수 자서전』의 번역자 박노원 목사가, 배민수의 아들 배영 박사와 협의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농어촌부에서 영인 출간한 시기가 1993년이다.

영인본 또한 정식으로 출판하지 않았고 당시 ‘마스터 인쇄’로 불린 형식으로 적은 수량만 인쇄하였다.

6년 후 박노원은 이를 번역하여 『배민수 자서전』을 출간한다. 영인하여 출간한 『Who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과 『배민수 자서전』은 몇몇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영인본에 실린 사진과 번역본에 실린 사진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민수의 생년월일은 1896년 10월 8일이다.

자서전의 영문 제목 “Who Sha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발췌한 것으로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태복음 7:21, 표준새번역)

조혁연은 『청주의 역사인물』 158페이지에서 “염곽상(鹽藿商)이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은 배창근은”이라고 기록하며, 각주에서 “염곽상(鹽藿商): 마른 미역을 파는 장사치”로 소개하고 있다. 염곽상에 대해 방기중은 ‘마른 미역을 파는 장사치’보다는 포괄적인 ‘등짐장수’로 서술하는데, 이편이 좀 더 적절해 보인다. (방기중, 『배민수의 농촌운동과 기독교사상』,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9, P.32)

또한 162페이지에서는 “배창근의 사형 집행은 『순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실릴 정도로 당시 정부도 주목했다.”로 기록하는데,

배창근의 행적을 강조하려는 의도는 이해할 수 있으나 역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순종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배창근의 교수형 집행에 대한 객관적 사실을 기록할 뿐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가 선별적으로 기록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조혁연은 주요 참고문헌으로 “『배민수 자서전』(1999, 연세대학교 출판부), 청주군 청주면 본정삼정목(本町三丁目)의 『토지조사부』(1912), (1912), 『독립운동관련판결문자료집』(2011),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1(1974)” 등으로 기록하는데, 배창근과 직접 관련이 적은 “청주군 청주면 본정삼정목(本町三丁目)의 『토지조사부』(1912)”를 제외하고는 이미 모두 잘 알려진 문헌들이며, 『배민수 자서전』을 제외한 대부분 문헌은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다.

조혁연의 배창근에 관한 서술이 전적으로 『배민수 자서전』에 의존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배창근에 관한 기록은 아들 배민수의 『배민수 자서전』 기록이 유일하다.

이는 배창근의 의병활동이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사료가 부족함을 의미하며, 청주에서 배창근이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여러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이 가지는 한계인 ‘미화된 기억’과 ‘기억의 오류’는 『배민수 자서전』 여러 곳에서 상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인 배창근의 의병 활동과 순국」 139페이지에서 『배민수 자서전』의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는 기독교 안에서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조국까지도 구원할 길을 찾으셨다. 그는 선교사들과 협력하면 일본을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위 인용문에 대해 조혁연은

“배창근이 왜 기독교를 믿게 됐고, 그 안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는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앞 문장의 2개 목적어 중 하나는 ‘조국까지 구원’이고, 뒷문장의 희망 섞인 목적어는 ‘일본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배창근은 이미 내면에 자리 잡은 이 같은 의식화된 신념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사려 된다.”라고 서술한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입신 경위에 관해서는 이덕주 등의 연구로 많이 알려졌고, 청주읍교회의 초대 신자 중에는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일본을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청주읍교회에 입교한 초대 교인은 배창근 외에도 방흥근과 함께 광남학교를 설립한 김태희가 대표적이다.

청주읍교회를 설립하고 청주선교부를 개설한 밀러의 『조선에서의 복음』(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번역, 1999)과 이달 중 출간할 밀러의 『조선인 친구들』(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번역, 2024년 3월중 출간예정)에는 밀러가 기록한 청주, 충북의 여러 기독교 입신 사례를 보여준다.

인용문에서 배민수가 전하는 아버지의 생각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항일운동에 나선 배민수의 삶을 투영하였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들과 협력하여 일본을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기독교에 입신했던 많은 사람의 바람과는 다르게, 선교사들은 바로 이 시기에 ‘평양대부흥운동’을 전국적으로 조직하여 신자들이 의병투쟁(선교사들은 ‘소요 사태’ 또는 ‘반란군’이라고 표현한다)에 가담하는 일을 막았고, 이에 격분한 많은 이들이 전국에서 교회를 떠나기도 하였다.

조혁연의 글 속에서 배창근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을 정리해 보았다.

이를 통해 배창근에 대해 함께 알아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청주 사회에 배창근을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서 노력 해주신 조혁연 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전한다.

12/03/2024

본 연구회에서 이번달에 출간할 예정인 '조선인 친구들'은 37개의 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중에서 17 번째 에피소드를 책이 나오기 전에 소개합니다.

17. 술집 아들

“어머니, 기독교를 믿으시고 평판이 좋지 않은 이 일은 접으시는 게 어때요?” 성록이가 안아 시장에서 가장 큰 주점을 운영하는 여인에게 물었다.

“나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만, 네 동생도 너처럼 학업을 마칠 때까지는 별수 없잖니! 네 아버지도 이젠 힘에 부쳐 농사도 못 지시니 지금 이 술 파는 일을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하겠니! 너도 이제 곧 아내를 얻고 부양가족이 생길 터인데 내가 너에게 기댈 생각은 없다. 너는 기독교인이 되거라. 하지만 내게는 좀 더 시간을 다오.”

“하나님이 어머니께 시간을 더 허락하실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리고 저는 어디 가서 아내를 구해요? 저는 기독교인 아닌 여자와는 결혼하지 않을 거고요, 어떤 기독교인 부모가 자기 딸을 술집 아들에게 주겠어요?”

그러나 성록이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목공 일을 열심히 다했고 부업으로 석공 일에도 상당한 기술을 익혔다. 어느 주일 날 시장 근처의 일곱 개 교회를 담당하는 순회 목사 윤 씨가 성록이를 옆에 앉히고 말했다. “다른 목사님들께 편지를 써 보냈지만, 자네에게 맞는 적당한 여성은 찾을 수 없다네. 미안하네, 모친께서 장사를 그만두실 때까지 기다리거나 아니면 어디 먼 곳으로 이사해서 자네가 완전히 독립하는 방법밖에 없어.” “알겠습니다.” 젊은이는 대답하였다. “그리고 여자들의 부모를 탓하진 않겠습니다. 기다리며 기도하는 방법밖에는 없지요. 지금 기도해 주세요.” 두 사람은 함께 머리를 숙이고 간구를 들어주시는 아버지께 그들의 문제를 내려놓았다.

청주 구역의 기독교인들은 연례 행사로 10일간의 사경회를 열었다. 목사들은 목사들끼리 기숙사의 한방에서 먹고 자고 했으므로 그들의 목회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자연스럽게 논의하였다.

“저는 이 사경회에서 해결해야 할 난제를 하나 부탁받고 왔습니다. 한 주점 집 딸을 위해 신랑감을 찾는 일입니다. 이름은 신성이라고 하는데, 부모가 술을 팔고 있다는 것이 그녀의 잘못은 아니지요. 예수를 잘 믿는 아주 좋은 색시입니다. 사실이지 그녀에게 더욱 믿음성이 가는 것은 그녀는 너무도 순수하고 사랑스럽게 성장해서 마치 연못의 진흙 바닥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아가씨입니다. 그러나 가망이 없는 일임을 저도 아는 것이, 어느 기독교 가정에서 술집 딸을 감히 며느리로 받아들이겠습니까?” ---- 다음에 계속됩니다.

12/03/2024

일석 김태희 선생 2024년 삼일절 추모행사 - 만세 삼창

12/03/2024

일석 김태희 선생 2024년 삼일절 추모행사 - 개회_묵념_약전보고

12/03/2024

일석 김태희 선생 2024년 삼일절 추모행사 가족대표 참배

12/03/2024

일석 김태희 선생 2024년 삼일절 추모행사 식전 준비

2024년 일석 김태희 선생 추모 삼일절 기념행사105주년 3.1절을 맞아 일석 김태희 선생 추모 기념행사를 김태희 선생 후손들과 김태희 선생 기념사업회와 함께 미원중앙교회와 묘소에서 가졌습니다자세한 내용 보기
01/03/2024

2024년 일석 김태희 선생 추모 삼일절 기념행사

105주년 3.1절을 맞아 일석 김태희 선생 추모 기념행사를 김태희 선생 후손들과 김태희 선생 기념사업회와 함께 미원중앙교회와 묘소에서 가졌습니다

자세한 내용 보기

참석자 뒷줄 좌측부터 이창호, 이영진, 김철용, 김시찬, 한상남, 최지호, 이종문, 강진규 앞줄 좌측부터 김...

2024년 일석(一石) 김태희(金泰熙) 선생 추모 3․1절 기념행사제1부일시 : 2024년 3월 1일 오전 10시 30장소 : 미원중앙교회(김시찬 목사):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단재로 2466사회 : 최지호 이사∙ 회...
29/02/2024

2024년 일석(一石) 김태희(金泰熙) 선생 추모 3․1절 기념행사

제1부

일시 : 2024년 3월 1일 오전 10시 30

장소 : 미원중앙교회(김시찬 목사):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단재로 2466

사회 : 최지호 이사

∙ 회원 소개 및 자기소개, 친교의 시간

제2부

일시 : 2024년 3월 1일 오전 11시
장소 :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운암리 산 36번지 김태희 선생 선영

사회 : 최지호 이사


∙개회

∙묵념

∙김태희 선생 약전 보고 - 이영진 이사

1877년 10월 18일 청주시 탑동에서 출생하신 김태희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00년대 초반 청주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밀러(민노아 閔老雅) 선교사와 김흥경 조사와의 만남에서 기독교와 서구 사상을 습득하였고, 1904년 방흥근(方興根), 김원배(金元培) 선생과 ‘널리 인재를 모아 교육한다’는 의미의 광남학교(廣南學校)를 방흥근 선생 사저에서 개교하였으며, 교장은 김태희 선생이 맡아 청주지역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하였습니다.

광남학교는 1908년 일제의 조선교육령으로 인하여, 청주선교부와 청주읍교회의 도움으로 학교를 청주읍교회 부지 안에서 청남학교로 개명하여 학부의 정식 인가를 얻었으며, 이후 청남학교는 청주선교부와 청주읍교회에서 운영하여 기독교교육과 민족교육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김태희 선생은 1909년에는 대동청년당, 1919년 9월 25일 국민회 충북도회 회장을, 1919년 10월 전국 각도 대표 24명이 평양에서 대한민국총회 설립시 평의원에 피선되었고, 1919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통제 충청북도독판부가 조직되자 참사 임명받았고, 1920년 6월 19일 청주청년회 창립 부회장 피선되고 후일 회장을 역임하였고, 1920년 12월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청년연합회 조직 시 청주청년회 대표로 참석하였습니다.

1921년 현 도청 서문에서 조치원 가는 도로 확장 공사와 무덕전(武德殿) 신축공사로 청주여자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사용되던 망선루(望仙樓)가 헐릴 위기에 처하자, 당시 청주청년회 회장이며 청주읍교회 장로였던 김태희 선생이 이를 매입하여 보존하는 중요한 일을 담당하였으며, 1924년 망선루가 청주읍교회 구내로 이전되었고, 청남학교 교사와 청주청년회 사무실로 사용하였습니다.

1923년 3월 29일 민립대학 발기인 총회에 청주군 대표로 참여하고, 1927년 12월 22일 신간회 청주지회 결성 시에는 임시의장으로, 후일 간사로 활동하였고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하였다가 구금되기도 하였습니다.

신탄진으로 이주 후 1935년 신탄진 대홍수에는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인명 구조하였으며 1936년 6월 26일 신탄진 자택에서 향년 60세로 서거하셨습니다.

1959년 조건상 선생의 도움으로 신탄진 공동묘지에서 미원 선영으로 이장하였고, 1963년 대통령 표창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받았고, 1970년에는 묘소 앞에 비문을 건립하였습니다.

⦁ 만세삼창 – 후손 김성구

⦁ 기념 촬영

⦁ 광고 - 김연수 이사

⦁ 폐회

⦁ 점심 식사는 미원중앙교회 옆 소나무집입니다. 김시찬 목사님께서 준비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사업회

고문 : 김현구(후손 대표), 안재명(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

이사 : 김연수(후손), 유희수, 이영진, 최지호

[출처] 2024년 일석 김태희 선생 추모 3․1절 기념행사 순서|작성자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2024년 일석(一石) 김태희(金泰熙) 선생 추모 3․1절 기념행사 제1부 일시 : 2024년 3월 1일 오전 10시 30 ...

Address

상당구 무심동로 336번길 93
Cheongju
28532

Alerts

Be the first to know and let us send you an email when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 사업회 / 충북향토사도서관 posts news and promotions.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used for any other purpose, and you can unsubscribe at any time.

Contact The Museum

Send a message to 충북기독교역사연구회 / 일석 김태희 선생 기념 사업회 / 충북향토사도서관:

Share

Category